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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독이 우리를 만나게 한다
    꿀팁 2021. 11. 30.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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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라(님랏 카우르)는 인도 뭄바이 교외의 어느 아파트에 사는 가정주부다. 그는 딸에게 학교 갈 채비를 시키면서 혹여나 집 밖에서 사고라도 당할까 봐 조심할 것들을 신신당부한다. 집을 나선 딸이 좁은 비포장 도로를 가로질러 스쿨버스임직한 오토릭샤에 다다른 것을 보고서야 주방으로 돌아온다. 

     

    일라는 맛에 신경을 쓰며 부산스럽게 요리를 하는데 그 음식을 먹을 사람은 마땅히 남편이리라고 짐작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오늘 혹은 최근 어떤 일로 사이가 냉랭해지거나 틀어진 것으로 보인다.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남편의 마음을 풀거나 열어보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일라는 카레와 난을 만들어 기다란 원통 모양의 철제 도시락통에 차곡차곡 담고, 그 통을 다시 정성스럽게 녹색 가방에 담아 때를 맞춰 찾아온 노령의 배달원에게 건넨다. 녹색 도시락가방은 다른 도시락 가방들과 자전거에 매달려 폭우가 쏟아지는 도로를 달린다. 한참을 갔다 싶은데 여정은 이제 시작이었다. 가방은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다시 수레에 실려 옮겨진다. 배달원들은 말없이 도시락가방을 옮기고, 한데 내려진 가방들을 또 다른 배달원이 들고 이동한다. 마치 도시의 사람들이 품앗이하듯 각자 음식을 만들어 내놓은 익명의 도시락을 무작위로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과정처럼 보인다.

     

     

    착오가 빚은 착각

     

    일라의 도시락은 사잔(이르판 칸)의 책상에 놓인다. 서로 잡담을 나누기도 하는 다른 직원들과 달리 사잔은 업무 외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무뚝뚝한 표정의 그는 점심시간이 되자 사내 카페테리아로 가서 도시락가방을 연다. 도시락통을 하나씩 열어 음식을 들여다보는 그는 어딘지 평소와 다르다는 반응이다. 도시락통은 그날 오후 무사히 일라에게 돌아온다. 식사시간이 끝나면 배달원들은 도시락가방을 수거해 오전에 왔던 길로 되돌려 보낸다. 일라는 배달원이 도시락가방을 현관문 앞에 놓고 가는 소리가 들리자 기다렸다는 듯 밖으로 나간다. 가방을 위아래로 들어보며 무게를 확인한다. 남편이 음식을 다 먹었을까, 아니면 남겼을까, 혹은 손도 대지 않았을까. 돌아온 가방의 무게가 가벼울수록 일라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도시락통은 텅 비어 있었다. 일라는 음식이 하나도 남지 않은 도시락통을 이게 웬일이냐는 표정으로 기뻐한다. 남편이 자신의 음식을 깨끗이 먹어치웠다는 건 부부관계 호전의 청신호였다.

     

    고독이라는 공통분모

    고독이 마음의 허기라면 서로 마음을 나누는 교제는 밥을 먹는것처럼 텅 빈 마음을 채우는 일일 것이다. 일라의 어머니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날 “돌보는 게 너무 힘들어서 네 아빠가 죽으면 어떨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막상 죽으니까 그냥 배가 고프다”고 한다. 사잔이나 일라나 세이크나 제각각 외로운 사람이지만 그외로움을 공통분모로 가까워진다. 삶이 충만하기만 한 이들은 고독한 이들과 제대로 교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신의 고독은 타인의 고독을 이해하는 단서가 되고, 타인의 고독은 자신의 고독을 털어놓을 공간이 된다. 일라와 사잔은 고독을 공유하며 조금씩 고독으로부터 멀어진다. 영화 속 그 누군가의 말처럼 가끔은 잘못탄 기차가 우리를 목적지로 인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일행을 만났다면 목적지에 다다르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일라과 사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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