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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넘어 천년의 증거를 기대하며연구보고서 2023. 3. 28. 08:45
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그리 배웠고, 그 뒤로도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 시대 목조 건축물이었다. 10여 년 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이 그보다 오래된 것으로 알려지기는 했지만. 어쨌 거나, 어린 눈에도 무량수전이 좋아 보였는데 그래도 시내 한복판에 버티고 선, 돌을 다듬어 지은 교회 건물이 훨 씬 멋져 보였다(그때는 어렸고, 지금은 절대 아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을 서울로 갔는데 옛 궁궐을 보게 되자 고향 교회는 단박에 시시해졌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 장 높다는 삼일빌딩을 보느라 뒤로 자빠지도록 고개를 젖힌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남산으로 가는 길에 명동성 당을 보고는 정말 두 눈이 휘둥그레져 한동안 넋이 빠졌다. 어린 눈에도 세상 어떤 건물과도 비견할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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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행 섬진강, 하동, 화개장터, 쌍개사문화여행기행 2023. 3. 25. 08:33
경남 하동은 처음 가본다. 벚꽃 하면 진해가 먼저 떠오르고, 매화 하면 광양이 앞서 생각나는 교과서형 여행자다. 그런데 전라와 경상 경계에 자리한 하동은 벚꽃과 매화를 동시에 눈에 담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자 지리산을 품은 절경으로 명성이 자자해 마음이 절로 동했다. 섬진강을 곁에 두고 위로는 ‘십리벚꽃길’의 은은한 분홍빛 향연이 펼쳐지고, 곳곳의 마을과 산기슭에는 향 짙은 매화가 피어 뭉글뭉글 어여쁜 꽃구름을 만든다는 곳이라니. 아랫녘에 당도한 봄을 맞으러 하동으로 향했다. 서울에서 출발해 휴게소 한 번 들르고 달리기를 4시간여. 산과 들이 다정하게 이어지더니 차가 햇살 아래 보석처럼 빛나는 섬진강을 끼고 달린다. 소란스러운 도시에서 벗어나 봄기운 여문 길을 달려서인지 하동은 생각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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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여행, 남원의 봄으로 떠나보자, 광한루, 남원국악전시관문화여행기행 2023. 3. 23. 07:24
자연이 주는 선물 문득 어린 시절 맛본 남원산 고로쇠 물이 생각났다. 고로쇠 물을 마시면 뼈가 튼튼해진다는 어머니 말씀에 의심 반, 호기심반 마음으로 물을 한 사발 들이켰다. 약간 달큼하면서 밍밍한 맛에 썩 반기지는 않았어도 곧잘 받아 마신 기억이 난다. 요즘 은 챙겨주는 이 따로 없어 고로쇠 물을 맛본 지 꽤 오랜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맘때였다. 봄기운이 돌지만 차가운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무렵, 더운 곳에 오래 두고 마시면 상한다고 해서 ‘물도 상하는구나’ 생각했다. 검색해보니 2월부터 이미 고로쇠 나무 수액 채취가 시작됐다고 해서 의심 없이 남원으로 향했다. 물 맑기로 유명한 지리산 뱀사골 계곡 인근에서 나는 고로쇠 물이 워낙 질 좋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뱀사골 계곡을 끼고 가다 보면 판매장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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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증평 여행, 김소월 시인을 찾아서, 경암문학예술기념관문화여행기행 2023. 3. 19. 09:00
진달래꽃 너머 김소월 시인을 찾아서 증평에 시인 김소월을 기념하는 문학관이 문을 열었다고 했을 때, 그리고 그것이 한반도 남쪽에 지은 최초의 ‘김소월의 문학 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증평이 충청의 남쪽이었나, 북쪽이었나?’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 든 생각은 ‘어 라? 우리나라에 김소월의 문학관이 없었나?’ 하는 것이었다. 처 음의 생각은 청주와 오산까지는 자주 들어 알면서도 그 인근에 자리한 증평군까지는 미처 살피지 못한 탓이었고, 두 번째 생각 은 그의 시 ‘진달래꽃’을 당연히 아는 것처럼 단지 지금까지 찾 아가지 않았을 뿐 그를 기념하는 곳이 이 땅 어딘가에 당연히 있을 거라고 여긴 탓이었다. 주말 내내 오락가락하던 비가 그치고 난 뒤 도착한 증평은 청 명한 가을 하늘을 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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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문학관, 김용택시인 섬진강 학교문화여행기행 2023. 3. 18. 09:00
기형도 문학관 기형도 시인이 어릴 적부터 살아온 경기도 광명시에 2017년 11 월 기형도문학관이 문을 열었다. 상설 전시실은 어릴 때부터 죽 기 전까지 세상에 남긴 시인의 흔적을 되짚어볼 수 있는 공간 이다. 70여 명 되는 반에서도 1등을 줄곧 놓치지 않던 학급 성 적표부터 1983년 받은 연세문화상 윤동주문학상 당선 상패와 시, 산문, 소설에 이르는 여러 육필 원고도 볼 수 있다. 시를 입 체적 영상으로 표현한 안개의 강이라는 공간은 시인이 썼던 시 ‘안개’의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는 부분을 떠올리게 한다. 기형도문학관은 누구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형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문학창작교실 기형도시인학교에서는 11 월 3일까지 매주 일요일마다 좋은 시를 읽고, 곁에 머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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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집, 윤동주 문학관을 찾아가 보자한국의문화역사 2023. 3. 17. 07:36
이상의 집 일제 강점기였던 1910년에 태어나 28년이라는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이상은 매일이 분주했을 듯하다. 자신의 재능과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펼쳐낸 수많은 문학, 그림, 건축물을 찬찬히 살펴보면 절로 드 는 생각이다. 경성에서 태어난 그는 3세부터 20여 년간 종로구에 있는 백부의 집에 살았다.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그 터에 ‘이상의 집’이 있다. 2009년 토지를 매입 했고, 서촌 속 쉼터이자 이상을 떠올릴 수 있는 곳으로 운영되다 2018년 12월 재개관했다. 4월부 터는 해설사가 상주하며 짧고 뜨거운 생을 살다 간 이상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경복궁 서편에 자리하고 한옥이 많은 오래된 동네지만 뉴트로 열풍을 타고 젊은 세대도 찾는 핫한 지역으로 떠오른 서촌의 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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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시인, 백석, 김소월, 시 낭독회한국의문화역사 2023. 3. 16. 06:31
조선의 통치 이념을 엮은 법전 에는 “산천에서 놀이를 즐기는 부녀자는 장 100대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조선 시대 담장 너머 세상은 당시 여인들에게는 거대한 차별이자 도전이었다. 당시 장 100 대를 받은 죄인은 모든 관직에서 물러나야 할 정도로 중한 형벌이었으니 당시 부녀자를 보는 보수적· 사회적 시선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 시대만 해도 남성과 거의 동일한 지위와 권리를 갖고 제사까지 모 실 자격이 있던 여성이 선남후녀(先男後女) 사상과 삼종지도(三從之道)를 강조한 조선의 유교 이념 탓에 어떤 공적 활동도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풍류와 문학을 당당히 즐기는 조선 최초 여류 시 동인회 삼호 정시사(三湖亭詩社)가 상당한 인기와 호평을 받으며 활동했으니 당시로는 기이한 일이라 하겠다. 당시 이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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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여행, 팔공산 갓바위, 반곡지문화여행기행 2023. 3. 14. 07:57
경산은 여행의 종착지라기보다는 경유지에 가깝다. 대구와 경주라는 경상권 대표 여행지 사이에 있어 여행객이라면 무심코스쳐 지날 법하다. 반대로 인근 대도시에서는 쉼을 찾아, 이야기를 따라 나들이객이 경산으로 넘어온다. 번잡한 일상에서 동 떨어진 곳으로 경산을 선택한다. 영남대학교 경산캠퍼스의 고즈넉한 민속원, 야경이 아름다운 남매지까지 가볍게 쉼표 찍기 좋은 곳이다. 조용하면서도 충만한 명소로는 반곡지가 꼽힌다. 사진가 사이에서 특히 이름난 저수지다. 책 펴듯 두 손바닥을 펼쳐 눈앞 대면 물 고인 데가 다 가려질 만큼 아담하다. 보통 걸음으로 한 바퀴 도는 데 10분이나 걸릴까. 하지만 꽃분홍빛 도화가 바짓 가랑이를 붙잡고, 억새와 들풀이 시선을 붙드는 통에 발걸음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사진가의 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