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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쌀이 귀하던 그 시절
    한국의문화역사 2022. 12. 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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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빠다(버터)’ 반 숟가락, 날달걀 한 개에 ‘소유 간장(양조간장)’으로 비빈 밥 한 그릇을 끼니 삼은 날들이 있었다. 달걀이 벗으면 마른 멸치를 간장이나 고추장에 찍어 반찬으로 삼았다. 그래도 밥은 언제나 따뜻하고 하얀 쌀밥이었다. 학교에 까만 꽁보리밥을 도시락으로 싸 오는 학생이 절반을 넘던 50년 전쯤의 가난을 썰 풀면 여차 꼰대의 궁상이 되기 십상이라 ‘하얀 쌀밥’으로 분칠했지만 허풍은 아니다.


    이민진 작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OTT 드라마 <파친코>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딸 선자를 위해 우리 땅 쌀 맛이라도 보여주고 싶다며 두 홉을 간청하는 엄마, 그에 공감해 일본 관리가 감독해 아무렇게나 팔 수 없는 쌀을한 홉 더 얹어 은밀히 내주는 양곡상의 마음을 보며 맥없이 눈물을 흘렸다. 말했지만 하얀 쌀밥으로 자랐음에도 눈물을 삭이지 못한 그 장면을 요즘 세대는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참 궁금하다.


    쌀. 충북 청주 소로리의 구석기 유적에서 1만5,000년 전볍씨가 출토되었는데, 지금껏 발견된 것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그깟 누가 오래냐, 시작이냐 따위는 사실 보존이나 발견의 문제니 이 글에서 의미를둘 바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긴 시간 동안, 근래 수십 년을 제외하고 쌀은 내내 사람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한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파친코>의 선자 엄마처럼.다른 먹거리도 언제나 풍성한 건 아니었지만 유독 쌀은 포한(抱恨)이 될 정도로 우리 민족에게 절절했다. 세상에, 쌀 때문에 마음에 원한까지 품다니! 어찌 아니겠나. 나물죽조차 없어 나무껍질까지 벗겨 먹어야 했던 때, 가물가물 죽어가는 자식이나 부모님은 쌀죽 한 그릇이면 자리를 벌떡 박차고 일어날 것 같은데 그놈의 쌀 한 톨 이 없으니 어찌 원한을 품지 않겠는가… 유의 이야기.

     

    물론 직접 본 적 없고 책에서 읽고 어른에게 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정도지만 괜스레 공감된다. 그런데 왜 하필 쌀인가. 닭 한 마리 백숙이면 거뜬하고, 하다못해 들판의 뱀이나 개구리도 생각할 수 있으니 원망을 그리로 돌려도 될 텐데. 결국 서사의 주인공이 쌀인 것은 주(主)이기 때문이다. 쌀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는다는 요즘에도 쌀과 밥이 주식이라는 것에는 누구도 이의가 없지 않은가.


    다행이고 행복하다. 드디어 1만5,000년 쌀의 한에서 벗어나 유휴 쌀 비축 비용이 수천억원을 넘어 조 단위에 육박할 지경이라니. 심지어는 ‘껌값보다 못한 쌀값’이라는 기사 제목도 있다. 

     

    그렇지만 이제 몇십 년 풍요에 너무 교만한 건 아닌지 떨떠름하기도 하다. 여전히 쌀은 중요한 기부 물품이 되고 소중하게 나눠지고 있으니 한의 불씨가 감춰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너무 청승인가, 그럼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야겠다.


    어릴 적 안남미라는 쌀을 본 적이 있다. 우리 쌀이 부족하니 원조를 받아 배급했거나 수입해 싼값으로 푼 것일텐데, 밥을 지은 어머니는 ‘밥알이 폴폴 날아갈 것 같다’ 며 투덜거렸다. 실제 젓가락으로는 턱도 없고 숟가락으로 떠도 부슬부슬 흘러내렸다. 

     

    이상하게 배도 일찍 꺼져 어른들은 근기가 없다며 천대했다. 해외여행을 다니며 그게 열대 환경에서 잘 성장하는 인디카 쌀이, 우리가 재배하는 자포니카 쌀보다 아밀로스 성분이 높아 찰기가 떨어진다는 걸 알았다. 배가 일찍 꺼진 것도 찰기가 떨어지니 체내 배출이 빨랐던 것일 테고. 슬슬 뱃살이 걱정되던 때 타국 생활을 하며 인디카 쌀로 밥을 지었다. 그래도 반지르르한 윤기는 포기할수 없어 압력솥으로 지었더니 제법 그럴듯했고 빠른 소화의 효능도 있었다.

     

    바야흐로 다이어트 시대에 유레카!


    가뜩이나 쌀이 남아 어려운 농민 생각은 하지 않고 무슨 소리냐고. 이미 소수 청년 농부들이 국내에서 양질의 인디카 쌀 재배에 성공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가져온 과일등 농산물 생산 지형 변화도 뚜렷하다. 즉석밥도 K-푸드의 얼굴 중 하나다. 우리 땅에서 생산한 향미 좋은 인디카 쌀로 만든 다양한 먹거리. 환경 변화에도 대응하는 새로운 장이 아닐까, 몽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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