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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금빛의 땅 나주 1.
    문화여행기행 2023. 2. 27.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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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주에 간다고 하자 여럿이 의아해한다. ‘거기에 뭐가 있는데?’ 잠깐 고민하다가 역시 음식으로 설명하는 게 제일이겠다 싶어 ‘나주곰탕이 있지!’ 하고 답했다. 하지만 짧고도 알찬 1박 2일간의 나주여행을 다녀와서는 곰탕 대신 옹골지게 답할 수 있는 것이 생겼다.

     

    지천에 금가루를 흩뿌린 듯 반짝이는 황금빛 보리밭의 나주평야와 아직 잠들지 않은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노라고.
    전라도 하면 보통 전주나 광주를 떠올리지만, 전라도의 지명이 전주와 나주를 합쳐 지었을 정도로 나주는 호남의 중심지였다. 고려를 세우고 후삼국을 통일한 태조 왕건은 당시 금성군이었던 나주를 중심으로 자신의 세력 기반을 만들었고, 금성군에서 주(州)로 승격시켜 나주로 개칭했다.

     

    후에는 나주목이라고 해 지방 중심지인 8목 중 하나가 되었다. 이로써 왕건이 점령하기 전에는 나주가광주에 밀렸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광주를 뛰어넘었다. 만일 왕건이 나주에 오지 않았으면 전광도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 나주는 고려 성종 2년(983)부터 조선 고종 33년(1896)까지 2군 8현을 거느린 전남 지역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기 때문에 ‘천년목사고을’이라는 전통을 지닌 도시로도 불린다.

     

    마침 또 올해가 전라도라는 지명이 생긴 지 1,000년을 맞은 해여서 유장한 세월을 품은 나주의 문화유산을 되새기고자 다소 긴 여행길에 올랐다.

     

    이번 여행의 서사는 나주평야에서 시작했다. 나주평야는 직접 두 발을 딛고 눈으로 담아야 실감할수 있는 곳으로, 고개를 한없이 돌려도 한눈에 담기 힘들 만큼 농토가 드넓게 펼쳐진다. 지천이 옥토(沃土)인 전라도에서 나주평야는 호남평야 다음가는 곡창 지대로 영산강 중류 나주시 일대에 넓게 펼쳐져 있다. 나주는 온난 다습한 지형적 특성 덕분에 예부터 농업이 발달했고, 삼백(三白) 지방이라고 해 쌀·면화·누에고치 생산으로 유명하며, 보리·고구마·마늘·양파·채소 등도 풍성하다. 특히 나주평야에서만 연간 5만 톤이 넘는 쌀을 생산할 정도라고 한다. 

     

    또 영산강 연안의 구릉지에서는 배를 비롯해 복숭아·포도·감·사과 등 과실도 많이 재배한다. ‘나주’ 하면 떠오르는 나주 배는 영산강변의 비옥한 황토에서 자라 과육이 부드럽고 당도가 높아 나주의 대명사로 손꼽힌다.

     

    나주 금학헌

     

    이처럼 나주평야는 농산물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해 식민 시절 대표적인 약탈 대상이었다. 일본은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설립해 한국 농민을 대대적으로 수탈했는데, 특히 1920년대 우리나라 쌀 생산을 늘려 대량의 쌀을 헐값으로 매입했으며, 쌀을 비롯해 여러 자원을 쉽게 가져가기 위해 철도와도로를 개통했다. 하지만 식민 지배 아래 우리나라 사람들은 극심한 식량난을 겪어야 했고, 결국 농토를 빼앗겼다.

     

    나주평야에 서린 아픔을 알고 나니 금빛으로 빛나던 땅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지금은 우리에게 풍부한 먹거리로 생명력을 주지만, 옛날 이곳에 살던 선조는 일제의 탐욕과 횡포에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 했을까. 인적 드문 곳에 잠시 차를 세우고 나주평야를 좀 더 가까이서 눈에 담았다. 황금빛을 입은 보리밭에 노랗게 익은 보리가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다 부딪치면서 귀를 간질이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낸다. 역사의 아픔은 금세 잊힐 만큼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놓고 말았다.


    발걸음을 돌릴 즈음 나주평야의 들녘 옆으로 늘어선 집들이 마음속에 평화롭게 잠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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