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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경산여행, 팔공산 갓바위, 반곡지
    문화여행기행 2023. 3. 1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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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산은 여행의 종착지라기보다는 경유지에 가깝다. 대구와 경주라는 경상권 대표 여행지 사이에 있어 여행객이라면 무심코스쳐 지날 법하다. 반대로 인근 대도시에서는 쉼을 찾아, 이야기를 따라 나들이객이 경산으로 넘어온다. 번잡한 일상에서 동 떨어진 곳으로 경산을 선택한다. 영남대학교 경산캠퍼스의 고즈넉한 민속원, 야경이 아름다운 남매지까지 가볍게 쉼표 찍기 좋은 곳이다.


    조용하면서도 충만한 명소로는 반곡지가 꼽힌다. 사진가 사이에서 특히 이름난 저수지다. 책 펴듯 두 손바닥을 펼쳐 눈앞 대면 물 고인 데가 다 가려질 만큼 아담하다. 보통 걸음으로 한 바퀴 도는 데 10분이나 걸릴까. 하지만 꽃분홍빛 도화가 바짓 가랑이를 붙잡고, 억새와 들풀이 시선을 붙드는 통에 발걸음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사진가의 출사지로 알려진 건 모서리 한 면을 꽉 채운 왕버들 때문이다. 우람한 기둥은 어른 서너 명이 나서야 겨우 감싸 안을 법하다. 압도적인 기둥에 이파리는 또 얼마나 풍성한지. 어린잎이 점묘화처럼 촘촘히 났는데, 길위에 드리운 그림자는 면을 이루고 있다. 바람이 불다 잠시 멈추는 순간 호수는 거울이 된다. 싱그러운 초록빛부터 깊은 하늘색까지 오롯이 반영한다.

     


    왕버들 그늘 아래, 노부부의 다정한 그림이 운치를 더한다. 돗 자리를 펴고 앉아 보온병에 담아 가져온 차를 후후 불어 마는 중이다. 사진 애호가들은 무만 한 망원렌즈, 시루떡만 한 카메라를 양어깨에 메고 어슬렁어슬렁 풍경을 관찰한다. 이토록 충만한 산책은 간만이다. 차를 돌려 나오고 나서야 한없이 느 린 시간 속에 잠겨 있었음을 깨닫는다.


    반곡지에 갔다면 차로 5분 거리의 삼성현역사문화공원도 함께 둘러보기를 권한다. 경산 출신 위인인 원효와 설총, 일연 등 삼인의 성현을 유물과 영상, VR 등으로 다양하게 조명한다. 멀티 1 미디어 위인전인 셈이다. 학예사가 상주하고, <대승신기론 강해>, <중변분별론소> 등 전문 연구 서적도 보유해 역사에 관심 깊다면 시간을 오래 내볼 만하다. 봄소풍 철을 맞아 문화관 앞 마당은 아이들로 북적인다. 레일 썰매장과 그네, 국궁장 등 여러 놀이 시설이 마련돼 있어 소풍 장소로도 손색없다. 연신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니 광대에 힘이 절로 들어간다. 주말이면 나들이객으로 3개 주차장 너머 길가까지 차량이 꽉 들어찬다.

     


    염원을 담아, 갓바위


    팔공산 갓바위는 ‘소원바위’로 통한다. 석불을 향해 정성껏 빌면 한 가지 소원이 반드시 이뤄진다고 한다. 정식 이름은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 머리 위에 갓 모양의 보개를 얹고 있어 갓바위라고 쉽게 부른다. 갓바위는 삼국 시대 선덕여왕 7년에 조성됐다는 기록이 있지만, 통일신라의 불상 조각 양식과 유사해 기록보다 늦은 9세기경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갓바위에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경산뿐 아니라 대구에서도 길이 있다. 그중 경산 선본사에서 오르는 길이 가장 짧고 편하다.

     

    산 중턱 관음휴게소(경산시 와촌면 갓바위로 613)에 차를 세운 뒤 12인승 셔틀버스로 선본사 입구까지 다다라 산행을 시작 한다. 매끄러운 산책로를 따라 20여 분 걷고, 계단을 타고 20여 분 더 오른다. 성인 걸음으로 넉넉히 40분가량 걸린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등산로는 유독 화려하게 치장했다. 연등을 밝히기 위해 산꼭대기까지 전선이 이어진다. 오를수록 봄바람이 점점 세진다.

     

    연등 날개 펄럭이는 소리가 마치 창문에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 같다. 8부 능선에서 약수를 삼키고 정상까지 쉼 없이 올랐다. 걸음을 거듭할수록 주변이 훤해진다. 마침내 마주한 갓바위의 등자락, 그리고 소원 비는 터…. 영험함을

     


    체감하지 못한 이 중생은 가장 먼저 장터를 연상했다. 인파가 많은 데다 공양미 파는 상점이 입구부터 늘어선 까닭이다. 호흡을 추스른 뒤 갓바위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섰다. 형형색색 연등이 그늘을 드리운 자리에, 소원을 이고 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신을 영접하고 있었다. 불경을 읊조리기도 하고, 끝 모르 게 절을 하기도 한다.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이 눈에 들자 괜스 레 콧등이 찡해진다. 두툼한 볼살과 귀, 풍만한 몸집의 갓바위 부처는 입을 꾹 다문 채 이 모습을 그저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다.

     

    몸이 앞으로 조금 쏠려 있어서인지 귀를 기울이는 듯한 인상이다.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가는 길, 오를 때 미처 보지 못한 소원성취문이 그제야 보인다. 공무원 시험 합격. 골프 선수 세미 합격.방송국 취업 성공…. 간절한 소원은 모두 이뤄졌을까. 소원 하나 내려둔 자리에 물음표를 채우고, 짧고 깊은 힐링 여행에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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