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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원여행, 남원의 봄으로 떠나보자, 광한루, 남원국악전시관
    문화여행기행 2023. 3. 23.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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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이 주는 선물

     

    문득 어린 시절 맛본 남원산 고로쇠 물이 생각났다. 고로쇠 물을 마시면 뼈가 튼튼해진다는 어머니 말씀에 의심 반, 호기심반 마음으로 물을 한 사발 들이켰다. 약간 달큼하면서 밍밍한 맛에 썩 반기지는 않았어도 곧잘 받아 마신 기억이 난다. 요즘
    은 챙겨주는 이 따로 없어 고로쇠 물을 맛본 지 꽤 오랜데, 가만 생각해보니 이맘때였다. 봄기운이 돌지만 차가운 기운이 다 가시지 않은 무렵, 더운 곳에 오래 두고 마시면 상한다고 해서 ‘물도 상하는구나’ 생각했다. 검색해보니 2월부터 이미 고로쇠 나무 수액 채취가 시작됐다고 해서 의심 없이 남원으로 향했다.

     

    물 맑기로 유명한 지리산 뱀사골 계곡 인근에서 나는 고로쇠 물이 워낙 질 좋고 맛있기로 유명하다. 뱀사골 계곡을 끼고 가다 보면 판매장도 여럿이어서 금방 채취한 물을 조금 맛보고 올 셈이었다. 그런데 2월 중순까지 한파가 이어지면서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야 가능한 수액 채취가 전혀 안 되고 있다는 아쉬운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예부터 개구리가 깨어나는 경칩이 되면 고로쇠 물을 마시는 풍습이 있었다. 보통 2월부터 4월까지 채취 가능한 수액은 본래 뼈를 이롭게 한다고 해서 골리수(骨利水)라고 불렸다. 이뇨 작용을 돕고 위장 장애에 효능이 있어서 많은 이들이 즐겨 찾았는데, 무엇이든 넘치면 탈이 된다고 과도한 채취로 우리 자연이 몸살을 앓는다는 기사를 본 기억도 난다. 자연이 주는 것이라면 과하지 않게 딱 주는 만큼만 감사히 받아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하며 계곡을 따라 와운마을로 향했다. 적당히 찬공기가 상쾌하고 햇살이 제법 포근하게 느껴져 1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힘든 줄도 모르고 걸었다. 탐방로도 잘 갖춰져 나무의 싱그러운 기운을 받으며 맑은 물 졸졸 흐르는 경쾌한 소리에 맞춰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이방인에게는 오직 두 발로 걸어가는 것만 허락되는 이 마을을 찾은 이유는 남원의 명물 지리산 천년송이 자리하기 때문이다. 수령이 500여 년으로 추정되는 이 소나무는 마치 우산을 펼친 것처럼 희귀한 모양으로 민속적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임진왜란을 견디며 자생해왔다고 전해지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수호신으로 여겨 매년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오랜만에 산책, 그것도 지리산이 품은 뱀사골 계곡의 맑은 정기를 받으며 걸으니 겨우내 움츠러든 온몸의 세포가 하나하나
    깨어나는 기분이다. 3월에는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 걷는 일정도 좋겠고, 경칩을 맞아 고로쇠 약수축제도 열린다니 더 기대
    된다. 인근에 위치한 허브밸리도 들러볼 만하다.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허브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이곳은 자생식물경 공원과 허브테마파크, 허브제품가공단지, 허브농업지구 등이 모여 있는 대규모 시설이다. 알록달록 다양한 종류의 허브를 만 만져보고 향기에 취하는 낭만 추억을 쌓을 수 있다.

     

    춘향이 부르는 사랑노래를 찾아 광한루

     

    남원은 춘향과 몽룡의 아름다운 사랑과 흥부의 따스한 심성이 배어 있는 고장이다. 언제 들어도 질리지 않고 아무리 많이 봐도 흥미로운 <춘향전>을 떠올리며 광한루원으로 향했다. <춘향전>의 배경이 된 곳으로 유명한 이곳은 사실 옥황상제가 사는 궁전 ‘광한청허부’를 지상에 옮겨오고 싶었던 이들의 열망을 담아 건설한 조선의 대표 정원이다. 서울의 대표 누각이 경복궁에 있는 경회루인 것처럼, 광한루는 진주의 촉석루, 밀양의 영남루, 평양의 부벽루와 더불어 지방에 위치한 우리나라 4대 전통 누각 중 하나로 꼽힌다. 누각을 둘러싼 호수와 사랑의 다리로 불리는 오작교가어우러진 모습이 밤낮 할 것 없이 아름다워 많은 이들이 광한루를 으뜸으로 꼽기도 한다. 영상으로 여러 번 접해서인지 광한루원 곳곳을 거니는 동안 춘향과 몽룡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교차된다. 

     

    광한루에서 가장 바라보기 좋은 큰 나무에 그네를 매달아놓고 어여쁜 춘향이 그네를 탔겠구나, 이 다리를 거닐며 사랑을 속삭이고 물빛에 비친 서로의 모습을 바라봤겠구나…. 광한루원 내에 구성진 판소리 가락이 계속 이어져 상상이 더 신명 난다. 1년에 한 번 밟으면 부부간 금슬이 좋아지고 자녀가 복을 받는다는 전설의 오작교를 건너고, 매년 춘향제가 열리는 완월정에 올라 원내 경치를 다시 한번 감상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춘향과 몽룡이 백년가약을 맺은 월매집을 재현 해놓았기에 들러 동전을 던져 ‘사랑가’를 나오게 하는 놀이를 한참 즐기다 나왔다. 원 내 전시관까지 돌아보고도 아쉬워 광한루원에서 강 건너에 위치한 춘향테마파크를 찾았다. 임권택 감독의 영
    화 <춘향뎐>과 드라마 <쾌걸춘향>의 촬영지로 유명한 춘향테마파크는 이야기를 테마로 만남의장, 맹약의 장, 사랑·이별의 장, 시련의 장, 축제의 장 등을 나누어 둘러보기 좋게 꾸며놓았다. 흥부와 놀부가 태어난 마을과 흥부가 복을 받아 잘살게 된 발복는 서로 이웃 마을에 위치한다. 이 두 흥부마을은 특별한 명소라기보다는 이야기를 곱씹으며 찬찬히 산책하기에 좋은 곳이다.

     

     

    남원 국악전시체험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춘향가’와 ‘흥부가’의 배경지인 만큼 우리 가락의 멋을 경험할 수 있는 명소도 있다. 국악의 산실이었으며 동편제를 완성한 가왕으로 불리는 송흥록 선생의 고향이 이곳 남원이다. 그를 기념하기 위한 생가와 우리 소리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국악의 성지는 이곳이 국악의 본고장임을 짐작하게 한다. 국악전시체험관에는 가야금, 아쟁, 북, 장구 등 전통 악기를 보고 직접 다룰 수도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 흥미롭다. 야외 공연장에서는 정기적으로 공연이 펼쳐져 국악의 멋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다.

     

    남원 6경으로 꼽히는 실상사는 여타 사찰과 달리 평지에 세워져 이색적이다. 신라 흥덕왕 3년,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는 위치에 있는 이 사찰은 참선을 중시한 구산선문의 시초이자 홍척스님이 지은 최초의 선종 사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

     

    많은 사람이 오간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손때 묻은 사찰이 꽤 운치 있다. 국보로 지정된 백장암 삼층석탑도 인상적이지만 보물 11점을 포함한 문화재가 많아 둘러보기 좋다. 그중 인상적인 것은 쇠를 녹여 만든 불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전해지는 철조여래좌상. 높이 2.69m의 거대한 모습에 근엄하면서도 온유함을 품은 표정이 돋보인다.


    10여 년쯤 전이었나. 한겨울 눈이 많이 오던 날 남원을 찾은 적이 있다. 눈과 추위에 발이 묶 여 광한루원만 겨우 들른 탓에 늘 아쉬움으로 남은 여행지였다. 날이 풀리고 봄이 되니 지리산길을 따라 사람들이 모이고, 바래봉과 인근 봉화산은 온통 철쭉으로 뒤덮여 멀리까지 달콤한 향을 전할 것이다. 광한루원은 매화가 만발할 테고, 우리 전통과 문화가 깃든 구석구석 까지 봄이 파고들 것을 생각하니 이렇게 낭만적인 곳이 또 있을까 싶다. 남원은 봄이 잘 어울리는 고장, 사랑이 피어나는 설렘 가득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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