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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마음이 힐링되는 시간 인제 여행문화여행기행 2023. 4. 29. 08:00반응형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라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바다”라고 답하던 때가 있었다. 아마도 바다는 자주 접하기 어려웠고, 산은 어린 시절 동무들과 오르내리며 놀던 익숙한 곳이기에 일종의 동경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누군가 같은 질문을 해온다면 “짜장면이냐? 짬뽕이냐?”의 기로에 선 것만큼 선택과 동시에 미련이 남을 듯하다.
더욱이 여름의 길목으로 들어서는 이맘때 숲은 싱그러운 초록빛도, 살아 숨 쉬는 생명도 가장 풍요하고 아름다운 시기다. 수백 미터 고지를 힘겹게 오르는 등산에는 여전히 흥미가 없지만 울창한 숲길을 걷는 즐거움을 알고부터는 바다보다 숲을 찾는 날이 더 많아졌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림으로 이뤄진 축복받은땅이다. 서울만 해도 남산, 북한산, 청계산 등 도심 곳곳에 명산이 여럿이고 서울숲, 양재 시민의숲, 각 지역자연휴양림처럼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코스도 제법 많다. 그 중에서도 우리 숲을 대표할 곳이 어디일까 고민끝에 인제를 찾았다. ‘대한민국의 허파’라는 수식어가 제법 잘 어울리는 인제는 울창한 원시림과 깊은 계곡, 맑은 물이 흐르는 청정 지역이다. 지리적으로 산악 지형이많기도 하지만 비무장지대로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태곳적 자연이 보존돼 있는 고장이다.산림의 생태적 가치와 역사·문화적 가치를 기려 지정한 국가숲길 1호도 인제를 지난다. 인제와 홍천을 잇는 백두대간트레일과 지리산둘레길, DMZ펀치볼둘레길, 대관령숲길이 국가숲길 1호다. 한동안 민간인 출입이 통제된 1구간 평화염원길부터 방동약수와 명지가리약수를 맛 볼 수 있는 6구간까지, 백두대간트레일을 걷다 보면 인제의 숲과 문화 그리고 역사까지 두루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람사르 습지 1호로 등록된 대암산 용늪과 유네스코 산림유전 자원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곰배령은 많은 이들의 버킷리스트로 꼽힌다. 생생한 자연사 박물 관이라고 해도 될 만큼 두 곳 모두 자연 그대로의 생태가 잘 보존돼 있다.
다만 이곳은 입산 기간과 인원 제한이 있어 사전 예약에 성공해야만 신비한 자태를 눈에담을 수 있다.방태산자연휴양림, 하추자연휴양림, 용대자연휴양림 등 가까이에서 숲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도 여럿이다. 그 중 산림청에서 선정한 100대 명산 중 하나에 이름을 올린 방태산은 자생하는 나무가 울창하고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는 인제의 대표 청정 숲이다. 숲길을 걷다 보면 푸르른 나무와 시원한 바람, 맑은 계곡 소리가 어우러져 절로 힐링된다.
자연의 속삭임
숲은 참으로 신비롭다. 계절마다 색색으로 물들어 개성이 확실한 것도 그렇지만, 시선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이라 지루할새 새가 없다. 멀리서 바라보면 웅장하고,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편안하다. 숲길을 걷다가 올려다보면 해사하고, 깊이 들여다볼수록 아기자기하다. 숲이 있기에 인류를 포함한 세상 모든 생명이 살아간다는 사실도경이롭다. 인제에는 빼어난 숲이 많아 목적지를 정하는 것부터 신중해진다. 시시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 ‘오래 보아야 예쁘다’고 했던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자세히 보고, 오래 볼 수 있는 여유가 필수다. 인제를 처음 찾는 이들 중 아마도 열에 예닐곱은 자작나무숲을 떠올릴 것이다. 한겨울 눈이 소복이 쌓인 설경도 멋지지만 이맘때 하늘 높이 솟은 하얀 자작나무와 싱그러움을 가득 머금은 초록 잎사귀가 어우러진 풍광 또한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인제에는 원대리와 수산리 두 곳에 자작나무숲이 크게 조성돼 있다. 그중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라고도 하는 원대리 자작나무숲의 명성이 자자하다.
입구에서 바라보니 나지막한 둘레길처럼 평탄해 보였다. 30 여 분은 정말 상쾌한 바람을 가르며 햇살에 반짝이는 나뭇잎도 감상하고 산새의 지저귐에 귀 기울이며 타박타박 걸었다. 뒤이어 1시간 정도는 난도 ‘중’ 정도의 등산을 했다. 때때로 숨이 가빠지기도 했지만 신중하게 걷느라 내려다본 땅에도 다양한 풀꽃과 식물이 동행해 즐거움을 더했다. 그렇게 도착한 자작나무숲은 역시 발걸음을 헛되게 하지 않았다. 높은 키에 새하얀 나무껍질로 둘러싸인 자작나무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고 상쾌했다. 얇은 나무껍질에 편지를 써서 보내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도 어쩐지 사랑스럽고, 자작나무 꽃말이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것도 괜스레 낭만적이다.
138ha 드넓은 땅에 뽀얀 자작나무 70만 그루가 식재돼 있어 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환상적이다. 참고로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산림청 산하 국유림으로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기간에는 입산을 금지하기 때문에 미리 산림청 홈페이 (forest.go.kr)에서 입산 가능 여부를 확인한다. 다행히 5월 중순부터 8월까지는 월요일과 화요일을 제외 하고 입산 가능하다.
인제 숲의 절경을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명소는 갑둔리에 자리한 비밀의 정원이다. 군사 작전 지역에 속하는 이곳은 오랜 기간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 같은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은밀하고 신비한 숲의 풍경을 보고 싶어 이른 아침 어둠을 헤치고 이곳을 찾았다. 잠을 설치며 부지런을 떨었는데도 도착해보니 이미 자리 잡고 삼각대를 세워놓은 사진가가 있었다. 이전에는 사진 촬영도 금지한 곳이지만 지금은 도로변 전망 데크에서 촬영이 가능하다. 해가 떠오르고 안개가 서서히 걷히면서 은밀하고도 신비한 비밀의 정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지각색 나무가 한데 어우러진 사이로 좁은 길이 나 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숲이 도로를 품고 있는 듯한 모습이 아름다워 카메라 셔터를 수십 번 눌렀다. 햇살의 움직임을 따라 다르게 보이는 숲의 질감이 마치 유명 화가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감동적이다. 이내 온전히 드러난 초록빛 숲 사이로 종알거리는 온갖 산새 소리가 선명했다. 의자와 테이블이 마련돼 있었다면 오래 머무는 이들이 더 많았을 것 같다. 아니 전망데크가 조금만 넓었더라도 털썩 주저앉아 머물고 싶은 장소다.
몸과 마음이 힐링되는 시간
여름맞이가 한창인 인제는 바라보는 곳마다 맑고 시원한 풍광으로 여행자를 설레게 한다. 숲이 푸른 만큼 바람도 상쾌하고 물도 투명하다. 내설악 깊은 곳에 자리한 백담사로 향하는 길, 이 고장 별미 중 으뜸으로 꼽히는 황태구이와 황태국으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 인제산 황태는 전국 생산량의 70% 이상을 차지할 만큼 맛과 품질을 인정받는 특산품이다. 백담사 입구인 용대마을 일대가 매년 황태축제를 여는 명소다. 축제 기간이 아니어도 마을에 줄지어 늘어선 크고 작은 식당에서 황태요태 요리를 맛볼 수 있다.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창건된 후 여덟 번이나 소실되고도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사찰로 만해 한용운 선생이 1905년 출가 후 수도를 시작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백담사 매표소가 있는 용대마을에서 사찰까지는 도보로 2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30분마다 운행하는 셔틀버스를 이용하는것이 편하다. 셔틀버스로 18분 정도면 백담사에 도착하는데, 내설악 품에 폭 안긴 아담한 사찰이 편안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무엇보다 백담사의 백미는 깨끗한 수질을 자랑하는 백담계곡과 그곳에 쌓인 수백 개의 돌탑 무리를 감상하는 것. 지금도 많은 이들이 이곳에 돌탑을 쌓으며저마다 소원을 빈다. 투명한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앉으면 여기가 지상 낙원이지 싶다. 색다른 체험으로 느슨해진 몸과 마음을 다잡고 싶다면 이곳에 머물며 사찰 문화를 체험하는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것도 좋겠다.백담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만해 한용운 선생의 흔적을 보다 자세히 엿볼 수 있는 만해마을이 자리한다. 이곳은 만해문학박물관과 만해학교, 북카페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편안하게 산책하기 좋다. 소양강 발원지인 인제에서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 따라 우리나라 아픈 역사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38선이 지나던 곳에 놓인 38대교를 건너면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38기념탑과 이제는 수몰된 옛 38교 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분단의 아픔을 잠시 잊으라는 듯 38대교와 잔잔한 소양강이 어우러진 풍광은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하다. 인제읍 덕산리에는 한미 합동작전을 이끌다 유명을 달리한 리빙스턴 소위의 사연이 담긴 리빙스턴교가 자리한다. 전쟁 당시 대원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한 리빙스턴 소위가 ‘이곳에 다리를 놓아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이후 그의 부인이 사비를 털어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평화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다리를 건너보았다.
마지막으로 짜릿한 스피드를 즐기는 이라면 인제스피디움이 필수 코스.카레이싱 국제 대회를 열 수 있는 3,908km의 서킷을 갖춘 자동차 복합문화공간으로, 대회 관람뿐 아니라 전문 드라이버가 운전하는 레이싱카를 체험할 수 있다. 별도의 라이선스를 취득하면 서킷을 직접 주행하는 기회도 주어진다. 자동차 마니아라면 고전 영화에서 봤을 법한 희귀한 클래식카로 가득한 '클래식카 박물관'에 들러보기를 권한다. 익숙한 자동차 브랜드의 역사를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언제라도 찾아갈 숲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인제에서 만난 푸르름을 가슴속 깊은 곳에 고이고이 담았다. 때때로 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면 다시 인제로 향할 작정이다. 그때는 하루 꼬박 백두대간트레일을 걷거나 곰배령 입산 예약을 하고 길을 나서야겠다.반응형'문화여행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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